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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휘파람새 봄을 안고 오다

고마운 봄의 단비가 내리더니 흰색 아이리스를 시작으로 꽃들이 뜰을 장식한다. 죽어가던 과일 나무들도 두어 해 음식찌꺼기를 묻고 물 좀 주며 돌보아주었더니 꽃들이 피었다. 어릴 적 부르던 ‘고향의 봄’ 노래 가사처럼 작은 꽃 대궐이다.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자주 만나는 작은 새들 중에 ‘휘파람새’가 좋다. 참새과로 영어로는 하우스핀치(house finch)라고 한다. 수놈은 노래를 부르는데 잿빛 깃털에 머리와 가슴 목 둘레가 불그스레하다. 노랫소리를 크게 들으려고 패티오 유리문을 활짝 열어둔다.   수십 년 이 집에 와서 처마 밑에 못을 치고 상자를 받쳐주자 새들은 둥지 만들었고 그 후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나 둥지에서 날아갔다.     상쾌한 휘파람 소리는 친정아버지와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한다. 지금으로 치면 상대 같은 학교를 나와 주판을 잘 놓으셨다고 들었다. 막내딸인 내가 태어난 서석동의 아담한 집을 처음으로 마련하셨다. 창의적으로 손수 설계도 하셨지만 실내도 많이 꾸미셨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며 늘 휘파람을 불던 아버지. 찔레꽃 피던 담에는 흰색 분필로 “아름다운 꽃을 꺾지 말고 바라보자”라고 쓰셨다. 부엌의 벽에는 “소중한 싸래기(부서진 쌀알)를 밟지 말라”고도 적으셨다.   집안 벽에는 밀레의 ‘저녁 종’ 명화부터 여러 그림과 방 한구석에는 일본 여배우 사진까지 걸어놓으셨던 예술적인 분이셨다. 이모가 내 수필집을 읽으시며 “너는 아버지를 닮았구나”하고 말한 이유다.   아버지는 젊은 날 성격이 급하시고 화도 잘 내셨다. 초등학교 때였다. 한번은 어머니랑 영화구경 하시고는 돌아오실 때 따로 들어오신 적이 있다. 어머니께 여쭈니 길에서 놀던 아이들이 실수로 아버지의 구두를 밟았는데, 마구 소리를 치다가 창피해지셨는지 먼저 휙 들어와 버리셨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뇌출혈로 쓰려져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는 기가 죽어 순한 양처럼 변하셨다. 늘 어머니한테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대학 재학시절 가정교사를 하며 힘들게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에 집에 가니 아버지께서 밥상에서 날 보며 “누구냐”고 어머니한테 물어보셨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삶을 곱게 마무리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시신이 든 관에 못이 박혀버린 뒤에야 도착했다. 죄송함은 평생 가슴에 남았다.     아버지는 돈 욕심도 없었다. 도둑질하고 불량하게 사는 걸 제일 싫어하셨기에 월급쟁이 가장은 여기저기 이동하시며 힘들게 사셨다. 그런 와중에서도 부모님은 늘 올바른 사람이 되는 정신적인 교육을 하셨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남에게 손 내밀지 않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면서 남에게 베풀며 살기를 노력한다.     지금 살아계시면 113세가 되실 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세대 어른들이 고생하여 세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너도 나도 힘들어 살맛도 나지 않으니 요즘은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휘파람새를 바라보면서 제발 나의 답답한 가슴 좀 뚫어 달라고 하소연해본다. 최미자 / 수필가이아침에 휘파람새 휘파람새 봄 휘파람 소리 흰색 아이리스

202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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